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흥미로운 세계관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등장인물과 혼연일체가 되는 영화를 가장 좋아해요. 비행기가 추락하는 중이라면? 근데 내가 파일럿이라면?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처럼 급박한 재난 또는 사고 속에 놓인 상황에서 특히 몰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클라이밍, 스카이다이빙, 모터스포츠, 서핑 등을 '익스트림 스포츠'라고 해요. 조금만 실수해도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잡생각은 떨쳐버리고 오직 스포츠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일. 멋지지 않나요? 저는 예전에 <엑시트>를 보면서 주인공이 건물 외벽을 맨몸으로 오르는 장면만 눈에 보였어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환경에서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뒤로 하고 다음 단계에만 집중하는 주인공의 모습... 정말 리스펙했습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앞부분 줄거리만 소개하니 완전 비즈니스 영화 같네요! 이 작품의 진가는 엄청난 스피드의 모터스포츠 장면에서 나옵니다. 결정적인 순간 레이싱에 집중한 등장인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대사도 없고, 배경음악도 없고, 엔진 소리만 들릴 뿐이에요. 오직 지금 코너를 돌 때 핸들을 얼마나 돌리는지, 다음 코너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그 사이에 변속은 어떻게 하는지만 생각합니다. 영화 상에서는 고작 3초지만, 제가 등장인물이었다면 그 시간이 슬로모션으로 흘러갔겠죠? 이런 장면들 덕분에 인생 영화가 되었어요. 

“ 7000 RPM 어딘가엔 그런 지점이 있어. 모든 게 희미해지는 지점. 차는 무게를 잃고 그대로 사라지지. . . ”

영화에서 ‘7000 RPM’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계기판에서 보이는 이 선을 넘으면 차의 가속도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데 자칫 무리하다간 엔진이 고장나기 일쑤죠. 그래서 엔진의 소리와 진동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데요. ‘나’라는 존재조차 까먹고 무아지경(無我之境)이 된 주인공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이걸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보시면 더 새롭게 느껴질 거에요!